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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과정 발자취/2019년 15기

15기 자원활동가 김연아 선생님 글 (다시서기 소식지)

by vie 2020. 11. 11.

 

 

노숙인을 위한 인문학과정 성프란시스 대학 (이하 성프란시스)에서 자원활동가로 15기 선생님들과 함께 한 지 5개월이 되었습니다.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에서 지금까지의 활동에 대한 소감을 물으셨는데 사실 조금 난감합니다. 자원활동가 중에는 일 년 내내 활동하셨거나 작년 기수에도 활동하셨던 분도 계시고, 그분들과 비교하자면 저는 선생님들과 실없는 농담이나 주고받는 사람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 을 함께 했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활동하면서 배운 것은 대학에서 4년 동안 배운 것보다 많습니다.

성프란시스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건 한겨레 신문 기사를 봤을 때였습니다. 이후 포털사이트에 서 검색을 해보니 때마침 일 년 동안 함께 할 자원활동가를 모집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조울증 치료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선뜻 나서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8월 우울에서 벗어나면서 사람들과는 어울리고 싶었지만 뭔가 내 능력을 크게 요하는 동아리나 독서 모임은 싫고 (결론적으로는 성프란시스에도 문학수업이 있긴 했지만요.) 취업 준비하는 제 또래와 어울리기엔 우울증이 다시 도질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 하루는 텔레비전을 보다가 쪽방촌에 대한 다큐를 봤습니다. 그 다큐에서 ‘홈리스는 하우스리스 즉 물리적인 형태의 집이 없는 게 아니라, 가정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말을 듣자 갑자기 성프란시스가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과 함께 그 길로 성프란시스 강의실이 있는 문화카페 길을 방문 했습니다.

저녁 7시가 조금 넘은 시간. 평소 같으면 문 을 닫을 시간인데 그 날은 하필 안에 두 분이 계셨고 쭈뼛쭈뼛 성프란시스에 대해서 물어 보는 저에게 일단 앉아보라고 하셨습니다. 한 분은 15기 1학기 회장님이셨고 다른 한 분은 후암동 인근에 거주하신지 오래된 자원활동가분이셨습니다. 그때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자원활동가 사이에서는 이곳이 산소와 같은 공간이다.’

그렇게 인연이 되어 바로 그 다음주에 있는 예술사 방학 특강을 듣게 되었습니다. 아름다움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냐는 교수님의 질문에 한 선생님께서 “금강산이요!” 라고 망설임 없이 대답하셨는데 그 순간 ‘아, 이곳에 계속 나와야겠다’라고 결심했습니다. 저는 어떤 대답을 해야 심오해 보일까? 이렇게 말하면 교수님과 철학적인 대화가 가능할까? 예술적인 대답이 무엇일까? 따위를 생각하느라 머리가 지끈지끈했거든요. 그런데 금강산이라니... 너무 맞는 말이라 머리를 한 대 맞 은 것 같더군요. 당시에는 학교를 다닌다는 생각만 해도 아주 지긋지긋했는데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성프란시스를 통해서 경험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가끔 수업은 지루하기도 합니다만, 선생님들의 학구열을 느낄 때면 마음을 다잡게 됩니다. 선생님들은 학교를 다니지 않아 배운 것이 없다며 머리가 나쁘다고 하시지만, 인생에 대한 통찰력과 지혜로움이 글로써 나타날 때는 절로 감탄이 나옵니다.

선생님들을 만나면 “식사 하셨어요?”라는 말을 가장 먼저 듣게 되는데, 하도 많이 듣다 보니 선생님들을 뵙지 않는 일상을 보내다 보면 그 말이 그립기까지 합니다. 외국인들 이 한국말을 배울 때 한국에서는 밥 먹었어 요? 라는 말을 인사말로 한다는 것을 신기해 하는데요. 사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거나 매일 출퇴근하는 직장이 없는 저로서는 이 말을 들을 기회가 없다는 것을 성프란시스에 나가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말이 얼마나 따뜻하게 들리는지도요.

갑자기 나타난 외부인인 저를 따뜻하게 받아주신 15기 선생님들과 교수님, 안국장님 그리고 자원활동가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밥은 매일 먹는 것이고 산소는 주위에 너무 흔해서 평소엔 안중에도 없습니다만. 밥과 산소가 없으면 살 수 없는 것처럼 성프란시스도 우리 선생님들께는 그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15년을 한결같이 있어온 것처럼 계속 그렇게 그 자리에 있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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