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이 가장 싫어하는 말
노숙인이 가장 싫어하는 말이 노숙인이다. 쪽방이나 독서실 아니면 '시설'에서 잠을 자는 분들은, 자신을 결코 노숙인이라고 부르지 말아 달라고 항변한다. 말 그대로 이슬 맞고 사는 게 아니기 때문이라고 한다. 설령 한때 노숙 생활을 했더라도, 아니 현재 노숙을 하는 처지에 있을지라도 노숙인이라는 용어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노숙인이라고 부르는 그 순간부터 한국 사회는 노숙인에 대해 어떤 선입견에 사로잡힌 고정된 이미지를 떠올리기 때문이다.
머리는 대책 없이 엉클어지고 옷은 남루하기 그지없는 행색, 낮이나 밤이나 술에 취해 횡설수설하는 모습. 그러다 밤이 깊으면 서울역 대합실이나 지하도에 쓰러져 자는 인간 군상. 알코올중독에 게으르고 제 몸 하나 추스르지 못하는 '인간과 동물의 경계', 잔혹하지만 노숙인을 그렇게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한마디로 사람 취급을 하지 않는 용어, 일방적으로 도와주어야 할 대상이거나 자포자기해 도와줄래도 어쩔 수 없는 딱한 존재, 심지어는 범죄자처럼 취급하는 세태가 반영된 것이 바로 노숙인이라는 용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요컨대 노숙인이란 그분들 스스로가 지은 이름이 아니라 외부의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부르고 그로 말미암아 부정적 이미지가 가득한 '인격 모독적'인 용어라는 것이다. 아무도 그분들의 이름을 부르지도 않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노숙인은 노바디(nobody)인 셈이다. 다른 한편 한사코 노숙인과 구별해 달라는 분들의 항변에는 서울역 앞의 인간 군상으로 취급받기 싫다는 자기 구별과 함께 나 역시 다시 그러한 삶으로 떨어지면 어떡하나 하는 공포가 심연에 자리잡고 있기도 하다.
<거리의 인문학>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