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제27호

[역전 칼럼] 서울역 야생화

성프란시스 2025. 3. 20. 08:55

 

서울역 야생화

                                                                                                            박경장/성프란시스대학 글쓰기 교수 

 

나는 산을 좋아한다. 20대에는 오직 설악산만 다녔다. 그것도 기록 재듯 대청봉과 주능선 상의 거대 암봉만을 향해 내달렸다. 특정 구간을 몇 시간 내에 주파하는가가 중요했고 자랑거리가 된 일종의 정복산행이었다. 30대부터는 산길 중심으로 올랐다. 같은 산이라도 매번 다른 길로 오르고 내렸다. 지정등산로가 아닌 금지된 산길을 탐구하고 모험하고픈 열망으로 달뜬 시기였다. 하지만 여전히 설악, 지리 같은 큰 산만 올랐다. 큰 산에서 벗어난 것은 40대에 들어서부터였다. 그때부터 난 전국 아무 산이나 쏘다녔다. 정상, 바위, 계곡, 능선... 산속이면 다 좋았다. 오르기만 한 것도 아니어서 산속 아무 곳이나 머무르다 내려와도 좋았다. 그때 비로소 나는 멈춰서 산길 발밑세상을 보기 시작했다. 그 후로 오르기만 한 산에서 들로 내려왔고, 풀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멈춰섰다. 그리고 무릎을 꿇었다.

 

산과 들, 흙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작디작게 피어나는 풀꽃이 우리 들꽃이다. 꼿꼿이 앞만 보고 걸어가는 사람은 절대 볼 수 없다. 우리 들꽃은 멈춰서 무릎 꿇어야 비로소 드러나는 발밑세상이다. 커서 혼자 뽐내듯 핀 외래종과 달리 우리 들꽃은 작아 무리지어 군락으로 핀다. 작은 체구에 혼자 피어서는 이웃 큰 풀이나 나무에 햇빛과 물을 빼앗겨 종족을 번식할 수 없기에 최대한 무리지어 핀다. 너무 작아 화분에 심어 화초로도 팔리지 않는, 옮겨 심으면 아예 죽어버려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화. 햇빛과 달빛을 받고 비와 바람을 맞으며, 새와 나비를 부르고 온갖 짐승에게 먹히며 발밑에서 뭇 우주생명을 떠받치는 풀꽃. 내가 40대 들어서야 비로소 무릎 꿇고 보게 된 우리 들꽃세상이다.

 

40대 후반에 성 프란시스대학과 인연을 맺으면서 나는 서울역의 다른 세상을 보게 됐다. 그전까지 그냥 지나쳐갈 땐 보이지 않던 서울역 발밑세상이 멈춰서니 보인 것이다. 처음엔 술에 취해 바닥에 널브러진 홈리스들이 아스팔트에 핀 곰팡이나 시멘트바닥에 들러붙은 껌만 같았다. 하지만 인문학을 매개로 거리선생님들과 만나면서 나는 서울역광장 바닥 틈새에서도 노란 민들레가 피어난다는 걸 깨달았다. 60대 중반으로 들어선 지금까지 나는 매년 무수한 민들레 홀씨들이 서울역 주위로 날아가는 걸 보았다.

 

지난 한해 성 프란시스대학에서 만난 선생님들은 모두 꽃이다. 우주생명을 바닥에서 떠받들며 상처로 피워낸 서울역 야생화다. 봄이 되어 다시 서울역 주위로 날아가기 전 나는 그 풀꽃 하나하나를 호명해본다. 개나리 선생님, 진달래선생님, 제비꽃선생님, 씀바귀선생님, 꽃잔디선생님, 꽃마리선생님, 바람꽃선생님, 애기나리선생님, 은방울꽃선생님, 고들빼기선생님, 뽀리뱅이선생님, 방가지똥선생님, 금낭화선생님, 질경이선생님, 미나리선생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