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두 시에서 또 다른 새벽 두 시까지
새벽 두 시에서 또 다른 새벽 두 시까지
표양종
아침에 눈을 뜨면서 일상의 하루를 시작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나의 하루는 조금은 특별하다. 새벽 두 시가 되면 서울역 거리 팀 컨테이너로 향한다.
서울역에서 거주하는 노숙인들과 만남을 갖고 따스한 차 한 잔, 따스한 옷가지, 그들에게 필요한 생필품도 나눠주고 빵 한 조각이라도 그들의 배고픔과 잠자리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이형운 팀장님과 이선근 선생님과 함께 해오고 있다. 거리 자활근로이긴 하지만 언제나 앞장설 수 있는 나 자신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남들 이야기가 아닌, 나 또한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삶이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희망을 줄 수가 있다면 언제나 도와주고 싶다.
근무 시간이 끝나고 나면 리어카를 끌고 서울역에서 명동까지 이동을 하며 폐지와 고철, 신문지 등을 줍는 일을 한다. 피곤하지만 내가 할 일이 있다는 것은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이고, 그것 또한 안 할 수 없는 이유는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찬바람이 불어도 눈이 내려도 생계를 이어가려면 걸어야 했고 뛰어야 했으며 그래야 노력한 만큼의 여유를 만들 수가 있었다. 상점들이 모두 문을 닫은 새벽에 버려진 박스와 신문 등을 리어카에 차곡차곡 가득 실어야 겨우 돈 만 원을 벌 수 있다. 땀방울을 흘리는 노력의 대가치고는 작은 돈이지만, 이 돈으로 가족이 행복할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견딜 수 있다.
아침 8시가 되면 리어카에 실은 폐지를 고물상으로 가져간다. 명동에서 다시 서울역까지 한 시간을 그렇게 이동한다. 시간은 10시가 넘었고 오늘 번 돈은 13,000원이다. 돈을 손에 쥐고 비워진 리어카를 다시 끌어 서울역 산동네 쪽방으로 향한다. 나의 집은 서울역 산동네 제일 꼭대기. 웬만한 사람은 그냥 걸어도 숨을 헐떡거리는 곳이다.
빈 리어카에는 내 꿈이 담겨 있고 아내가 담겨 있고 희망이 담겨 있다. 사랑과 행복을 위한 나의 삶까지도. 그렇기 때문에 지금 내가 끌고 올라가는지도 모른다. 작은 방이지만 둘이 살기에는 괜찮은 편이다. 가끔은 식구들이 찾아와 술도 한 잔씩 하고 가지만, 손님을 위한 준비는 항상 철저해서 언제라도 환영한다. 아내도 작은 일을 하고 있고 나 또한 비록 리어카를 끌고 있지만 어쩌면 이것이 나에게는 진짜 행복한 삶인 것 같다.
조금 잠을 청하고 깨어나면 후 2시가 된다. 산동네 근처에 버려진 신문지, 고철 등을 수거하러 돌아다닐 시간이다. 혼자 일이 아니라 근처에 동생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다. 잠들어 있는 동생 집을 찾아 깨워서 동네에서 모아 놓은 폐지와 고철들을 수거하러 다닌다. 동네 분들께서 박스와 신문지를 밖으로 모아놓는 시간이기 때문에 이 시간쯤 되면 조금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한정운 선생님도 자주 도와주는 편이고 동생들도 이 시간만큼은 부지런한 모습으로 열심히 일들을 해준다.
두세 시간의 일이 끝나면 집으로 불러 간단한 식사를 준비하여 땀 흘린 만큼의 에너지를 보충시켜준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흘러가면서 어둠은 찾아오지만 모아놓은 폐지를 다시 고물상으로 향하기 위해 산동네를 내려온다.
시간은 빠르게 흐른다. 저녁식사를 아내와 함께 먹으면서 하루를 정리하는 유일한 행복의 시간이다. 식사 후의 한 잔의 커피를 함께 나누는 것이 어쩌면 가족이란 테두리 안에서 알콩달콩한 둘만의 시간이 아니겠는가.
휴식과 약간의 수면을 갖는다. 그것도 어김없이 9시가 되면 눈을 뜬다. 야간에 서울역과 용산을 돌아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눈이 많이 내린 요즘에는 미끄럽지만 어차피 내가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한 치의 망설임도,꾸물거릴 이유도 없다. 용산과 남대문을 돌면서 희망과 삶을 따라 정해진 인생의 길을 걷는 지금 이 순간이 가장 보람되고 행복하다.
처음과 끝처럼 같은 시간에 시작과 마감을 한다는 것도 나만의 특권인 것 같다. 새벽 두 시에서 또 다른 새벽 두 시까지, 잠도 안 잘 것 같은 이 말. 이러한 거창한 말은 어쩌면 아내와 함께 행복해야 할 권리가 내게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에 오늘도 나는 새벽을 두드린다.
끝으로 컴에 미숙한 저 대신 대필해주신 내 친구 이성근에게 감사드린다.